▲'아파트 마을, 이촌동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관련 사진1 <출처 : 서울시>
서울역사박물관은 강남이나 여의도보다 앞서 형성된 이촌동 아파트 단지의 역사와 다채로운 주거 형태를 담은 『아파트 마을, 이촌동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를 발간했다. 이번 조사에는 시범아파트, 맨션, 시영·시민·공무원·외인아파트 등 아파트의 '백화점'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유형이 공존했던 이촌동의 기록이 담겨 있다. 이촌동의 옛 지명 중 하나는 ‘옮길 이(移)’를 쓴 ‘移村洞(이촌동)’으로 한강의 홍수로 인한 잦은 이주를 경험한 동네라는 뜻을 담고 있다. 본래 이촌동에는 사촌리, 신촌리, 신초리 3개의 마을에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1925년 을축년 대홍수를 겪으면서 이촌동은 조선 2인 거주가 금지되고 폐동(廢洞)이 됐다. 해방 이후 모래밭은 대규모 정치적 집회의 장소로 활용되기도 하고 여름과 겨울철 스포츠의 장소로 애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용산과 접한 빈 땅에는 무허가 판자촌이 형성되고 한강의 수질과 환경은 급격히 훼손됐다. 1962년 건설부는 한강 변을 매립하여 시가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며, 1966년 서울시는 이촌동의 한강매립공사를 최초로 완성했다. 한편 1967년 한강 유역의 홍수 통제를 위해 소양강 다목적댐이 착공되자 추진기관인 한국수자원공사는 자원 마련을 위해 한강 연안 매립사업을 시작했고 첫 대상지로 이촌동을 선택했다. 서울시가 이미 1966년에 완성한 이촌1동(동부이촌동) 매립지에 덧붙여서 한국수자원공사가 추가로 10만 평을 개발한 것이다. 그 탓에 이촌1동의 땅은 한강으로 불뚝 튀어나온 형태를 하고 있다. 서울시가 추진하던 이촌 매립공사에서 현재의 이촌로는 강변도로로 계획된 도로였다. 그러나 한국수자원공사의 추가 개발로 인해 현재의 위치로 강변도로가 변경되었다. 양분된 개발로 인해 이촌로를 중심으로 북쪽(서울시 개발)과 남쪽(한국수자원공사 개발)이 상이한 공간구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1968년 대한주택공사(현재 LH공사로 통합)는 ‘하이츠’와 ‘맨션’ 같은 고급아파트의 개념으로 한강맨션을 계획했다. 성공적 분양을 위해 주공은 최초로 모델하우스를 도입하여 획기적으로 선분양을 시도했다. 1971년 27~57평의 대형 아파트 660세대가 한강 변에 세워졌다. 현재 재건축의 막바지인 관리처분까지 진행된 상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