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미래 인터뷰]가와종합건축사무소 최삼영 대표

“목재가 주는 따스함과 견고함, 나를 먼저 감동 시킨다”
뉴스일자:2018-07-31 14:32:47
주택, 아파트, 병원, 교회, 미술관, 박물관, 빌딩 등 주위를 둘러보면 참 많은 건축물들이 있다. 전문가들이 함께 설계를 하고 시공을 한 후 완공하기까지 복잡하고 견고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로 건축물이다. 그 중 목재를 사용한 건축물은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것과 같이 아름다움을 뽐낸다. 은은하게 퍼지는 나무 향과, 나무 특유의 포근함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안정시켜 주기도 한다. 

최삼영 가와종합건축사 대표는 목재가 주는 따스함과 견고함은 고객을 감동시키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감동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최 대표는 목조건축물 전문가로 꽤나 알려져 있다. 그가 국내에서는 그다지 목조가 알려지지 않은 1900년대 후반에 처음 목조로 설계한 것이 바로 자신의 집 ‘민마루1주택’이다.

그간의 주요작업으로는 고양시 덕양구청사, 헤이리 터치아트, 경남산림박물관. 선사유적박물관, 거제 포로수용소, 민마루주택Ⅰ~Ⅵ, 갤러리소소와 게스트하우스 소소헌, SK동백아펠바움단독주택단지 등이 있다. 

친환경 목조 건축물로 아시아건축문화대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등 국내외 다수의 건축상을 휩쓴 최삼영 대표는 목조건축의 강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신없이 몰아친 지난 30여 년간의 바쁜 건축가로서의 삶에서, 이제는 숨고르기를 통해 깊이를 더하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은 가와종합건축사 최삼영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최삼영 가와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자료=urban114]

Q. 가와종합건축사가 걸어온 발자취를 소개한다면?

A. 1세대 현대 건축가의 대표 건축가 김수근 선생의 공간에서 건축을 시작했다. ‘공간 연구소’에 입사해서 매일 밤을 새다시피 현상공모를 중심으로 일을 해왔다. 입사한지 2년도 안 돼서 선생님이 돌아가셨는데, 그 이후 후임 소장님들을 모시고 10여년을 근무했다. 어느 날 유학을 꿈꾸고 있었을 때 즈음, 김수근 선생 사모님의 권유로 동경예대에 가기로 했다. 준비하던 중에 현상공모뒷바라지로 연명하다가 1994년 초기작이 당선되면서 개업을 하게 된 것이 벌써 24년이 흘렀다.

주로 현상공모를 많이 했다. 고향도 서울서는 먼 남쪽인데다 대학도 지방에서 다닌지라 연고도 없고 해서 수주가 어려웠다.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공간에서 현상공모를 많이 했던 것을 계기로 개업 후 첫 현상공모에 도전한 것이 당선이 된 것이다. 

공간에 있었을 당시 약 20개의 현상공모에 직간접 참여 했을 때는 한 건도 당선이 안됐었지만 나오자마자 바로 당선이 됐다. 운이 좋았고, 시기도 잘 만났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는 지금 만큼 건축시장의 경쟁도 덜 치열했고. 턴키나 PQ등이 없었던 시기라 참여 회사들이 건축사사무소 뿐이라 다소 순수한 편이었고 차별화 된 실력을 갖추면  당선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참여했던 공모 안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었다. 현상공모의 좋은 결과가 하나 둘 만들어 지면서 ‘최삼영’과 ‘가와’ 라는 이름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삼영 대표가 처음 목조로 설계한 ‘민마루1주택’/자료=가와종합건축사사무소]

Q. 국내 건축가들의 디자인 능력과 건축 기술은 엄청나게 급성장했다.
    대표님이 설계하는 건축물의 특징이 있다면?

A. 큰 공모가 당선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청사 설계를 현상공모로 당선시키면서 사회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기존의 관청사와는 다르게 힘을 빼고 친절한 표정으로 설계를 했던 것이 주목 받게 된 것 같다. 이후 경부선 만남의 광장 휴게소, 성동구 노인종합복지관도 당선되는 등 현상공모를 통해서 가와건축을 알리게 됐다.

지금은 목구조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적 관심으로 보편화를 달리는 판상형 구조체 CLT라는 진화된 구법에 관심을 가지고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간 보기 힘들었던 라멘조 공법, CLT구조 등 목구조구법을 앞서서 시도했다. 가와의 업무 비중을 보면 목구조는 콘크리트 건축에 비해 규모가 대체로 작아서 경제적인 측면에서 미비한 편이지만 일에 투자되는 시간만 보면 콘크리트 일보다는 목구조 일이 비중을 더 많이 차지하고 있다.

목조는 많은 건축재료 중 일부다. 콘크리트나 철골조에 밀려 목조는 관심 밖이 되고 목조건축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 6.25동란을 거쳐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급격한 산업화를 거쳤고 한옥은 자취를 잃어갔다. 건축은 대량중복생산 체계로 탈바꿈 됐다. 생산성이 적은 한옥은 대가 끊어진 것이다. 

학교에서도 더 이상 목조에 대한 교육도 사라져 버렸다. 나무에 대한 연구는커녕 관심마저 사라진 것이다. 나무는 건축 재료의 영역에서 자리를 잃어간 것이다. 

IMF경제위기 때 일이 없어서 ‘새로운 공부라도 해보자’ 생각하면서 학교에서도 배운 적이 없었던 서양식 목구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식을 찾아 헤매다가 다행히 캐나다에서 30년간 실무를 해왔던 분을 통해서 목구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가와에 일이 거의 없던 그 무렵 우연한 인연으로 알게 된 부동산 개발업자가 “소규모 부지를 3년 무상으로 빌려줄 테니 집을 지어 보지 않겠냐”는 제안으로 그 곳에 내 집을 짓기 시작했다. 내 집으로 임상실험을 한 것이다.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는데 그 집이 민마루 주택단지의 1호 주택이다.

[최삼영 대표가 ‘민마루1주택’을 설명하고 있다./자료=urban114]

짓고 보니 예상외로 주변의 반응이 좋았다. 그 집으로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게 되고, 아시아 건축상 금상도 받게 되면서 주변에 다섯 채의 집을 더 짓게 되었다. 이후 주택을 목구조로 설계하는 건축가로 알려지게 되면서 국내의 현대식 목구조 설계에서는 앞서는 위치에 있게 됐다.

Q. 건축가로서의 삶은 어떠한가. 남들과는 많이 다른가?

A. 건축을 왜 하느냐, 건축을 어떻게 하느냐를 생각해본다면. 건축의 본질은 사람과 땅과의 관계를 설정 해주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땅에 대한 겸손한 접근과 삶에 대한 친절한 숙고가 우선해야하는 직업이다.

어떤 직업이든 그렇지 않겠냐만. 회사 직원을 뽑을 때 직장을 구하는 이들과는 별로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 일을 왜하는지도 모르고, 시간만 때우다 퇴근하고, 월급만 기다리는 그런 사람들과 일하고 싶지 않은 건 어느 회사 오너들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이 일을 해야만 하는 방향성이 분명한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 

등산을 하는 이들을 보면 오로지 정상에 도달하는 것만이 목적인 이들이 많다. 작년 초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걸었다. 순례자들 중에는 오로지 목표점을 통과해서 도장 찍고 수료증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듣기로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온 한국인들이 다수 그렇다고들 한다. 나름 나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며 떠났다. 그저 한걸음 한걸음에 뜻을 두고 즐기기로 했다. 하는 일이 즐거워야 오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건축일 또한 팀원들과의 호흡, 건축주와의 관계 등 소통이 좋아야 한다. 사는 것은 늘 관계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좋은 결과도 따라오지 않을까?

건축가로서 무엇을 행함에 있어 기술이 필요하고, 설득의 논리도 있어야 하고, 만들어진 것이 내가 의도한 것과 같은지 한 번 더 생각한다. 그리고 연습에 연습을 더하고 있다. 지구상에 건축가만한 백지 소모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또한 잉크와 백지 소모를 지독하게 하고 있는 편이다.

Q. 가와건축사의 경영전략이나 방침이 있다면?

A. 사실 경영전략을 생각하면서 회사를 운영하진 못했다. 나는 경제적인 개념은 별로 없는 편인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해서 회사를 운영한다고는 생각을 못해봤다. 많이 벌고는 싶지만 수익이야 자연스럽게 따라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없어도 괴롭지만 너무 벌이에만 목적을 준다면 이루지 못한 자괴감만 커질 것이다. 늦게 깨달았지만 내 능력과 성향으로는 욕심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줄 알기에 무시해보려 애쓴다. 그저 어떤 일이든 있으면 열심히 하는 것이 내 철학이라면 철학이다. 

[최삼영 가와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자료=urban114]

Q. 국내 건축 업계의 진단과 가와건축사의 위치는?

A. 건축업은 경기가 늘 안 좋다. 내가 건축을 하면서 보낸 내내 경기가 나아지는 건 못 봤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지나온 세월들의 경기는 좋았던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 경기와 무관하게 운영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와건축사는 아파트나 공장 등 대량 중복 생산되는 일의 설계를 해보진 못했다. 주로 재미를 쫒다보니, 현상공모를 통한 문화시설이나 주택을 많이 설계했다.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일이지만 중복생산이 안되니 수익성은 적은 사업이다. 그래도 즐겁게 참여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복이라고 생각했다.

Q. 다수의 건축상을 수상했는데. 

A. 출품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닌데도 상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상복이 많다고 생각 된다. 개수로 세어보진 않았지만 많이 받았다. 결국 우리가 하는 일들은 만들진 건축의 결과를 통해서 찾아오는 사람들과 하는 게 가장 많다. 수상을 한 것도 홍보가 됐던 것 같다. 전반적으로 회사는 홍보도 경영도 미진했던 것 같다. 경영적 마인드가 없다고 해야 하나? 솜씨 있는 누군가가 회사 경영 좀 해줬으면 좋겠다.

[(위 왼쪽부터)갤러리 소소, 소소헌, 책 읽는 마을/자료=가와종합건축사사무소]

Q. 가와건축사를 확장할 계획은?

A. 오히려 축소해오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힘은 적당히 빠지고 주변은 점점 정리되어 가니 집착할 무엇도 줄어들게 되면서 마음은 다소 편안해진 것 같다. 이럴 때 욕심으로 키우기보다 자잘한 재미와 깊이에 몰두하고 싶다. ‘가와’라는 상호는 장인정신과 함께한다는 뜻으로 만들었으니 실천에 더욱 정진해야 할 때 인 것 같다. 관리 능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일에 몰두하기 위해 양은 벅차지 않을 정도가 나을 것이다. 

Q.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채근담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맛있는 음식은 담백하고 진정한 사랑은 평범하다.‘
글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거나 건축을 하거나 노래를 만들거나 모두 이야기를 생산하는 작업이다. 그 이야기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람과 자연 등 인간이 중심이 되는 관계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의 이야기를 담백하고 진정성 있게 풀어 갈 때 비로소 생산되는 건축의 격도 깊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광주 아시아 문화컴플렉스 국제현상설계/자료=가와종합건축사사무소]

[가와건축 주요 설계작품. (위 왼쪽부터)국립제주박물관 복합문화관, 용인 성복동 어린이·청소년 도서관, 세곡복합문화센터/자료=가와종합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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