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서울거리 1,2차 대상지/자료=서울시정개발연구원]
공공디자인을 통해 거리, 문화를 입다
도시에서 공공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한 도시의 이미지 확립에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하며, 문화적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고, 도시가 한층 복잡해지면서 공공공간에서 보다 합리적인 계획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생겨난 개념이 바로 공공디자인(Public Design)이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공공디자인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태어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런 공공디자인 중에서 가장 많은 과제로 대두되는 것은 도시가로환경이라 볼 수 있다. 도시에 있어서 가로는 단순히 이동을 위한 통로가 아닌, 사람이 만나고 소통하며 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매개적 공공의 장소이다.
서울시는 1998년부터 도시가로환경을 정비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목표는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는 길을 만드는 ‘걷고 싶은 거리’였다. 62억 원이 투입돼, 광진구 광나룻길 등 25개 자치구마다 한 곳씩 걷고 싶은 거리가 생겨났다. 이후 2007년, 서울시는 그동안 개별적으로 추진되던 각종 거리 조성사업을 통합하는 ‘디자인서울 거리’사업을 시행했다. ‘디자인서울 거리’조성사업은 단지 보기 좋은 거리의 수준을 넘어서 ‘삶과 지역문화’가 공존하는 거리로 만들고자 했다. 거리 자체가 서울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도시의 문화상품인 것이다.
서울시는 그동안 걷고 싶은 거리, 걷고 싶은 녹화거리, 간판이 아름다운거리, 교육문화의 거리, 도시 갤러리 프로젝트, 공공디자인거리 등의 가로환경개선 사업들을 통합 관리하고, 디자인서울의 4대 기본전략인 '비우는 디자인서울', '통합 디자인서울', '더불어 디자인하는 서울', '지속가능한 디자인서울'을 지향했다. 2007년 439억 원을 들여 1차 사업으로 대학로, 능동로, 강남대로, 이태원로 등 10곳과 2008년 894억 원을 들여 2차 사업으로 삼청동길, 통일로, 여의나루길, 서교로 등 20곳을 새롭게 조성했다.
디자인서울 거리 사업의 추진 체계는, 먼저 구청과 디자인 전문가, 주민대표,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총괄기획자를 선정했다. 총괄기획자는 사업의 기획, 설계, 시공단계까지 사업 전 과정을 통합지휘하며, 참여주체간의 정보공유와 전체적인 디자인 컨셉을 통일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위원회 자체심의가 완료되면 서울시 다자인서울총괄본부에서 디자인검토와 조정과정을 거쳐 사업을 시행했다.
주요 사업내용으로는 보도블럭, 가드레일, 휴지통, 벤치, 휀스, 볼라드, 버스정류장 쉘터, 가로판매대, 꽃매트, 녹지대 등 가로 공공시설물을 통합 개선하고, 전선 지중화, 분전함, 우체통, 공중전화부스 및 야간조명시설과 가로수 보호시설 등을 디자인했다. 거리 환경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 거리 환경 전체를 통합적으로 보는 디자인 시스템을 세웠다. 그러나 서울의 문화상품이 되고자 했던 거리조성 사업은 전시행정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한 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거리 개선사업, 문제는 ‘소통’이다
디자인서울 거리 조성사업이 본래의 취지를 잃고, 주객이 전도된 지자체의 일방적인 추진으로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서울시가 예산을 지원해, 구청장들은 앞 다투어 거리조성에 나섰다. 그러나 디자인서울거리 사업을 추진했던 은평구는 최근, 거리를 다시 원상복구 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31억8천만 원을 들여 2차로 도로였던 거리를 s자형 일방통행로로 바꾸고 보도블록과 빨간 투스콘으로 치장했다. 이후 투스콘 바닥이 일어나는 등 하자가 발생하자 2009년에 아스팔트로 덮어버린 상태였다. 거리가 처음 공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주민과의 갈등이 있어, 민원이 끊이질 않았다. 걷고 싶은 거리가 조성되면서 마을버스 노선이 사라지고, 소방차나 응급차도 다닐 수 없으니 주민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올해 11월, 은평구는 1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원상복구 공사를 시작했다.
양천구 신월로 역시 31억 원을 들여 만들어진 디자인서울 거리를 원상 복구하는 공사를 마쳤다. 양천구 신월로는 다세대 주택가로 주차공간이 부족해 주차난으로 고생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구는 주차장을 헐고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었다. 그 결과 불법주차가 심각해지고, 민원이 발생하자 6억9천만 원을 들여 다시 주차장을 설치했다. 거리의 특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주민과의 소통 없는 계획으로 인해 예산낭비와 주민의 불편을 가중시켰다. 전문가들은 디자인서울 거리 사업에 적절한 대상지 선정 기준이 없고, 주민 의견 수렴과 현장 조사가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사업추진방식이 지나치게 ‘보여주기식’으로 진행되면서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계획 등을 지적했다.
서울의 ‘디자인서울 거리’뿐만 아니라 지방의 자치단체들도 속속들이 걷고 싶은 거리 조성 사업을 진행했다. 원주시는 2008년부터 총사업비 129억여원을 들여, 중앙로 문화극장 구간 1.3km를 전선 및 통신로 지중화 등 걷고 싶은 거리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지난 7월, 원주시장과 가구골목 상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가구골목 251m 구간에 대한 문화거리 조성사업 추진 간담회가 열렸다. 원주시는 보행자 중심의 차 없는 거리, 아케이드를 활용한 카페 거리 등 젊음과 문화가 넘치는 거리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 가구점 상가들이 커피숍과 호프집 등으로 업종을 전환하고 가구골목 뒤편 빈집을 철거해 주차장으로 조성해야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차량 통행을 막는 ‘차 없는 거리’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인들은 기존에 조성된 거리도 일부 차량 통행이 제한되어 상점들의 매출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층 중요해지는 도시가로환경
[대구시 종로진골목/자료=대구시]
쇠퇴하는 원도심을 살리려는 움직임이 커지면서 가로환경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뉴타운, 재개발 등을 넘어서 지역의 문화를 발굴하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방법이 모색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노력은 지방자치단체 일수록 눈에 띄는 성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대구시 중구 종로진 골목은 가로환경개선사업을 진행했다. 대구시 중구는 원도심의 활성화를 위해 주민과 전문가, 행정이 함께 협력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도시만들기 지원센터 등을 운영하면서 지역주민들의 주도적 참여가 이루어졌다. 대구시는 이러한 성공적인 사업 진행에 힘입어 ‘2013년 아시아 도시경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됐다. 단순히 도시의 가로환경을 정비하고 시설물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고유의 문화를 만들려는 노력이 높이 평가 받았다.
청주시 중앙동의 경우도 주민과 자치단체가 중심이 되어 성공적인 성과를 보였다. 청주시 중앙로는 청주역과 시청, 중앙극장 등이 위치한 청주의 중심시가지였지만, 신도시 개발 등으로 도심 공동화가 빨라지면서 유동인구가 크게 감소했다. 이에 2009년 중앙로 상가 주민들이 변화를 추진했다. 주민들이 비영리 사단법인 ‘주민참여 도시만들기 지원센터’를 설립, 500m의 중앙로를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이같은 주민의 노력으로 유동인구가 5배나 많은 5천 여명으로 늘었고, 점차 상권이 살아났다.
공공디자인에서 도시가로환경을 바꾸는 거리조성 사업은 그 역할이 중요하다. 도시의 가로는 도시구조물, 시설물, 건축물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어, 충분한 현장조사와 전문가의 의견, 주민의 의견이 계획에 반영되어야 한다. 또한 관련 사업 및 행정 절차의 통합도 선행되어야할 과제이다. 서울시의 디자인서울 거리 사업의 경우, 현재는 디자인서울총괄본부도 사라져, 기존 조성된 거리조차 관리가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애써 디자인한 거리를 흉물로 방치할게 아니라, 문제점은 보완하고 지속적인 관리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