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일본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인구 감소에 따른 빈집 증가가 심각한 경제·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중장기적 도시관리를 위한 도시축소(Shrinking City)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빈집 비율이 14%에 육박하고 있으며 미국은 약 11%, 영국은 3% 중반, 독일은 1%대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과 독일의 빈집 비율이 낮은 이유는 주택 신규 공급을 제한하고 기존 주택을 활용하는 한편 빈집 정비에 대한 강력한 정책적 수단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의 공가율 변화/자료=부산발전연구원]
◆ 미국의 ‘영스타운 2010’= 미국 중서부 오하이오 주에 위치한 영스타운 시(City of Youngstown)는 철강산업 쇠퇴와 더불어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1970년대 최고 17만명에 달했던 인구가 2000년에는 절반인 8만명으로 감소하면서 발생한 도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1년 새로운 도시계획에 착수하였다. 도시 확장을 포기하고 8만명 인구 규모를 전제로 한 축소도시정책(Shrinking City Policy)인 ‘영스타운 2010’을 수립한다. 영스타운 2010 계획은 빈집이 발생할 것은 전제로 빈집 정비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사례이다. 2005년부터 4년 동안 철거한 빈집은 1,289가구로 총 379만 달러의 철거비용이 소요되었다. 빈집 정비 대상이 되면 소유주에게 수리 또는 철거할 것을 통지하고, 30일 이내에 소유자로부터 답신이나 수리 및 철거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직접 철거하게 된다. 철거비용은 이후 소유주에게 청구하며, 소유자가 지불하지 않을 경우 혹은 지불할 수 없는 경우에도 토지를 시가 강제 수용하는 강력한 집행력을 가진 정책이다. 시 소유로 귀속된 토지의 활용은 시의 토지은행(Landbank)이 중심이 되어 처리하는데, 주택과 토지에 대한 재산세를 2년 이상 납부하지 않은 경우도 토지를 강제 수용하였다. 다만 강제 수용의 경우, 소유자의 신용문제를 해소해주기 위한 방안으로 토지를 자진 양도하는 방식도 함께 운영되었다.
◆ 독일 라이프치히 시 빈집 재생 집단, 하우스할텐(HausHalten)=구 동독지역에 동일한 빈집 정비 정책을 추진했으나, 그 중 라이프치히(Leipzig) 시가 중심시가지를 중심으로 인구가 증가해 정책적 효과를 극대화한 도시로 꼽힌다. 독일 동부 작센 주에 있는 라이프치히 시는 1930년대 70만명의 인구가 2000년대 들어 50만 이하로 감소하였다. 이에 따라 라이프치히 시 주택의 약 20%에 달하는 6만호 정도가 빈집으로 방치되기에 이르렀다. 통일 후 빈집 정비를 위해 ‘동부독일 도시개조 프로그램’을 실시했고, 빈집 정비와 관련해 철거 시 1㎡당 60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빈집 정비와 동시에 주택의 신규 공급을 제한함으로써 2년 만에 공실률을 20%에서 16%로 낮추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빈집 소유자가 철거할 경우 시는 협정을 맺어 인센티브를 제공하였다. 철거한 토지를 10년간 녹지로 사용하는 대신 재산세를 감면해주고, 협정 종료 후 소유자가 토지에 건물을 신축할 수 있는 권리를 인센티브로 제공하였다.
하우스할텐(HausHalten)은 빈집 소유자와 사용자를 중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시민 단체이다. 인구가 급격히 감소해 지역적 문제가 되었던 린덴아우어(Lindenauer)지구의 역사적 건축물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린데나우지구협회 멤버를 중심으로 시 도시재생국의 지원 아래 학생·건축가 등이 모여 2004년에 설립되었다. 활동 초기에는 역사적·도시계획적으로 중요한 건물과 특히 19세기 말 건립된 그륀더짜이즈(Gründerzeit) 양식 건물의 보존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현재 하우스할텐이 추진하고 있는 빈집재생사업은 ‘집지키는 사람의 집(wächterhaus)’과 ‘증·개축집(AusBauHaus)’이 있다. 하우스할텐은 공공의 보조금을 받아서 빈집을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자가 자기 비용을 들이지 않고 그 공간을 사용하면서 보존하는 ‘사용에 의한 보전’ 방식이 가장 큰 특징이다.
‘집지키는 사람의 집(wächterhaus)’ 사업은 5년 기한으로 빈집을 사용 희망자에게 무상에 가까운 저렴한 사용료로 제공하는 것으로 2005년 시작해 2012년까지 시내 약 20건의 빈집 재생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소유주 입장에서는 사용자가 건물의 유지관리를 함으로써 관련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빈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5년간 해당 건물에 어느 정도의 수요가 발생할 수 있는지, 또한 활용 가능성이 있는지를 테스트 할 수 있어 이후 투자계획을 세울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반대로 사용자 입장에서는 원칙적으로 임대료가 없이 자신들의 활동과 생활에 필요한 자유로운 공간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집 지키는 사람의 집은 사용 전 상태로 원상복구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사용자 기호에 맞게 공간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계약방식은 통상적인 임대계약이 아닌 사용계약이며, 임대료가 없는 대신 사용자는 하우스할텐에 매월 0.5~2유로/㎡의 금액을 기부하는데, 이것이 하우스할텐의 운영비가 된다.
[집지키는 사람의 집(좌)과 증·개축집(우) 사업구조/자료=부산발전연구원]
‘증·개축집(AusBauHaus)’ 사업은 2011년 시작된 새로운 형태의 빈집 재생사업으로 ‘집지키는 사람의 집’이 5년의 기한이 있는데 반해, 소유자 동의 하에 사용기간 제한이 없는 빈집을 활용한 사업이다. 사용기한 제한이 없어 거주 등의 장기 활용이 가능함에 따라 임대계약을 체결하며, 건물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전문기술자·건축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하우스할텐에서 소액의 수수료를 받고 중개지원서비스를 제공한다. 젊은 사용자들의 경우 스스로 집을 수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필요한 공구와 기계를 빌려주고 수선에 필요한 자금조달 방법 상담, 전기·수도 시공에 관한 조언 등 주택 개보수 DIY에 필요한 다양한 지원을 한다.
[HAPS의 사업구조와 사무실 전경/자료=부산발전연구원]
◆ 일본 교토(京都) 시 빈집 재생 지원조직, HAPS= 일본의 경우 빈집의 급속한 증가로 2014년 10월 지자체 401곳에서 빈집 관련 조례를 운영하고 있다. 교토 시내에 약 11만 채의 빈집이 있으나 오랫동안 방치된 경우 개·보수 비용이 많이 들고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집주인은 빈집을 계속 방치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큐레이터 출신 활동가 엔도 미즈키 씨는 교토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빈집을 임대하고 싶은 집주인을 소개하는 활동을 구상하였다. HAPS(Higashiyama Artists Placement Service)는 예술가와 빈집 소유주 간에 발생한 특수한 소유과 공금을 데이터베이스화 하고, 이를 활용해 쌍방의 요구를 절충하면서 계약까지 코디네이션을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HAPS 사무실도 지은 지 100년이 넘은 쿄마찌야(京町家: 교토전통주택)가 20년 가까이 방치돼 있던 빈집을 활용한 사례이다. 지붕과 마루, 전기와 가스 설비를 수리하는데 2,000만엔의 견적이 나왔으나 이런 금액을 부담할 여유가 없는 집주인과 HAPS는 재생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팀 RAD(Research for Architectural Domain)와 논의를 거쳐 워크샵 방식으로 집을 수리하기로 결정하였다. 개·보수가 필요한 부분을 나눠 4개월 동안 워크샵을 진행하였고, 지역의 건축기술자와 예술가들이 강사로 자원하였다. 참가자들은 교토의 전통건축기법과 예술가들의 참신한 아이디어 등을 경험하면서 빈집 활용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였다. RAD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이후 빈집을 활용하고 싶은 예술가들이 DIY로 집을 개·보수 할 때 참고하도록 작업순서와 필요 인력·시간 등을 매뉴얼화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