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경제 정책을 펴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두 분기 연속 소득 격차 악화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정부는 인구 고령화와 업황 부진으로 소득 격차가 확대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일각에선 최저임금 인상 등의 원인을 지적하고 나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으로 소득 상위 20%(5분위)의 처분가능소득은 소득 하위 20%의 5.23배였다.
1년 전 4.73배와 비교하면 0.5포인트나 높아졌다. 1분위 소득은 감소하고 반대로 5분위 소득은 증가하며 2분기 기준으로는 2008년 후 소득 격차가 가장 커졌다.
올해 1분기 이 배율은 5.95배로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후 가장 나쁜 수치를 기록했다. 소득주도성장을 기치로 내 건 정부로서는 초라한 성적표를 보였다.
정부는 1분위 소득 감소의 원인으로 고령화를 꼽았다. 고용 부진은 소득 악화가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소득 감소가 일하는 이가 적고 소득도 낮은 고령층 가구가 1분위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년보다 더 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분위 내 70대 이상 가구주의 비중은 작년 2분기 35.5%였지만 올해 2분기 41.2%로 5.7%포인트 늘어났다.
고용부진도 1분위 소득 악화 요인으로 꼽았다. 1분위 비중이 높은 도소매·숙박음식업에 종사하는 임시일용직 고용이 축소됐고,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도 줄었다. 자영업자의 경우 일자리는 올해 2분기 1년 전보다 18만개 줄었다. 지난해 2분기에 2만5000개 줄었던 것과 비교하면 감소폭이 크다. 건설투자 둔화에 따른 건설 일용직 취업자 감소도 1분위 소득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반면 5분위는 임금 상승 폭이 확대되고 고용증가로 소득이 늘며 격차를 벌렸다고 정부는 전했다.
상용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 기준 평균 임금 상승률은 지난해 4∼5월 3.8%였지만, 올해 같은 기간은 4.4%로 증가했다.
상용직 취업자는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올해 1분기 40만9000명, 2분기는 33만5000명 늘어났다.
정부는 이밖에 분위별 가구원 수 차이도 소득분위별 가계소득 격차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가구당 취업인원수는 1분위는 18.0%, 2분위는 4.7%, 3분위는 2.1% 각각 감소한 반면에 4분위는 2.5%, 5분위는 5.0% 증가했다. 한 가구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소득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저소득층 소득을 늘리기 위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소득 격차가 벌어진 것으로 나타나자 정부는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통계청의 분석을 바탕으로 근본적으로 양질의 일자리 확충을 통해 소득분배 개선을 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부는 현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재원을 통한 저소득층 지원과 일자리 확대 방안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기획재정부는 “소득분배 개선을 위한 근본 대책은 양질의 일자리 확충”이라며 “규제개혁, 미래성장동력 투자 등 혁신성장 가속화로 민간 일자리 창출 여력을 키우고 앞서 발표한 저소득층 지원대책과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대책도 차질없이 추진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분석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의 핵심 정책 기조인 소득주도성장은 바꾸지 않겠다”는 입장만 재확인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야당은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연일 공세를 펴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과 결심으로 소득주도 성장 정책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고 지적했다.
반면 여당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효과를 위해 야당의 협조를 당부했다. 김경협 민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은 “소득주도 성장을 해낼 수 있는 법안들이 대부분이 국회에 그대로 다 발목이 붙잡혀 있는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무엇보다 경제전문가들은 정부의 분석만으로는 소득분배 악화를 전부 설명할 수 없고, 진단도 올바르지 않다고 평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언론을 통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의 경직적 시행이 1분위에 타격을 주고 있다”며 “정책 의도와는 다르게 소득이 낮은 계층을 중심으로 타격이 커지고 있으며, 연령·인구 구조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이어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운 의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사실상 정책이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노동시장 상황을 보면 지표를 개선하기 어렵기 때문에 두 정책을 중심으로 정책의 전면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도 “(2분기 소득분배 악화는) 최저임금만 올리고 다른 경제민주화 조치를 하지 않은 결과”라며 “부동산 보유세 강화, 대기업의 초과이익공유제 등 관련 세제를 개편하고 장기 로드맵에 근거한 재정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청와대는 지난 23일 올해 2분기 소득분배 지표가 10년 만에 최악을 기록하자 “상황을 엄중히 바라보고 있다”고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정례브리핑을 통해 통계청에서 발표된 가계소득동향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반응을 묻는 언론 질문에 “특별한 말씀이 없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대변인은 “1분기때나 엇그제 나왔던 고용통계 등에 나타난 상황을 엄중히 바라보고 있고 진지한 자세로 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